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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미술/고미술 도자기 이야기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만의 도자기 - 분청사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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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도자기 이야기 할 때 나는 가장 먼저 분청사기를 떠올린다.

 

청자와 백자는 아시아 국가권에서는 어찌보면 널리 퍼져있던 하나의 정형화된 도자기 형태라고 할 수 있으나 조선시대의 개국과 맞이하여 청자로부터 발전된 분청사기는 참으로 한국만의 것 이라는 표현에 딱 걸맞는 도자기라고 생각한다.

 

분청사기는 15-16세기에 주로 생산되었으며 15세기말 백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며 자연스레 사라진... 그런 도자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양권이나 같은 아시아권에서도 가장 짧은 시기를 보낸 분청사기를 한국 최고의 도자기로 이야기 하곤 한다)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33억원에 팔린 분청사기조화선조문편병

기본적으로 분청사기는 (분청자)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청자의 태토 (흙)에 비취색 청자 유약 대신 백토물로 태토 표면을 덮고 다양한 기법을 이용해 도안을 표현한 뒤 탁한 청자유 계열 유약을 입힌 도자기를 말한다. (청자 흙과 분청사기 흙은 성분이 같다)

 

분청사기의 원료는 계곡에서 많이 나오는 '사토'(거친 흙)이며 불순물도 많고 쥐색이나 회청색을 띈다. 

 

분청사기도 왕실용으로 제작된 것과 질 낮은 하품 (서민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이강효 도예가 굉장히 유명하신 현대 도예가이시다

태토에 하얀 백토를 입히는 것을 분장이라고 하는데 이는 양질의 태토 유악이 필요 없었고 번조 온도에도 덜 예민하고 수더분 하여 분청사기가 더욱 친근하고 만들기 쉬운 그런 이미지가 있었다.

 

특히나 그냥 백토물에 담궜다 빼는 덤벙기법이나 붓으로 쓱싹 하고 끝내는 귀얄기법이 분청사기 만의 독특하면서도 심플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15세기 분청사기는 상감기법과 인화기법이 유행하였는데

분청사기 상감연화당초문병

선상감 뿐만아니라 면상감 또한 발전하였으며 

 

분청사기 인화국화문완

국화로 가득 채운 인화기법 (도장기법) 또한 유행하였다.

 

인화분청사기는 세종&세조 (15세기)에 가장 많이 유행한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1467년 이후 관요의 등장으로 분청사기 대신 백자가 왕실자기로서 사용되어지고 아라비아에서 가져온 청화안료 (회청), 화려한 중국청화백자의 영향 (명나라) 그리고 경상도 하동에서 양질의 백자토를 발견한 후로는 일반계층에서 청화백자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분청사기는 민간용 그릇으로 인식되어 지며 생산방식 또한 여러개를 한꺼번에 굽는 포개구이 대량생산 스타일이 되기 시작했다. 

 

분청사기가 포개구이를 통해 대량생산되면서 분장이 더욱 짙어지기 시작하였다. 

 

이걸 포개구이라고 한다 아오 귀찮아! 라고 외친 도예가의 외침이 들린다

지역별로도 유행하던 분청사기 기법이 몇개 있는데

 

분청사기 인화문대접

경상도에서는 인화문 기법이

 

분청사기 조화문편병

전라도에서는 음각 (박지,선각) 또는 조화 기법이

 

분청사기 철화당초문병

충청도에서는 철화 (특히 유명하다 흔히들 계룡산 분청사기라고도 한다)기법이 유행하였다.

백토 분장 후 산화철 (석간주라는 붉은 점토) 안료로 그린 철화 분청사기 (청색 코발트보다 구하기 쉬웠다).

 

다른 기법들의 분청사기 도자기들은 전국적으로 만들어진 반면, 철화분청사기는 충청도 (계룡산) 일대에서만 주로 만들어졌기에 굽이 높고 철화로 그려진 분청사기는 계룡산 분청사기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철화분청사기는 왕실의 청화백자를 그나마 닮으려고 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분청사기 박지연화문편병 
분청사기 파어문병

연꽃과 물고기 (연화문 어문)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이는 불교세계의 정화를 의미하는 장식무늬였다.

 

연꽃은 당연히 부처를 뜻하는 하나의 상징이고 물고기의 눈 뜨고 자는 습성은 불교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쉼없는 정진 이라는 의미를 지녀 두 무늬는 불교와의 상징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조선왕실에서는 15세기 후~ 16세기 전반에 양질의 청화백자를 생산 후 분청사기를 사용한 예가 없다.

 

민간에서는 백자 사용을 금지하여서 16세기에 더욱 독특한 지방색을 지닌 분청사기가 유행하게 되었다. 

 

백자를 쓰고 싶은 서민들의 열망이 느껴졌던 두가지 기법이 존재하는데

 

분청사기 귀얄문병

붓으로 백토를 묻혀 그냥 쓱싹 쓱싹 아오 귀찮아 하면서 무심하게 그린 귀얄무늬

 

분청사기 덤벙문사발

그냥 백토물에 덤벙 담궜다가 꺼내어 굽고 땡 치는 덤벙무늬

굽을 잡고 백토물에 담그기에 굽부분에 유약이 없는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두가지 기법이 백자를 그나마? 써보고 싶었던 서민들의 열망이 느껴지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만의 도자기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분청사기는 

 

백자를 선호하는 수요층의 취향 변화에 따라 임진왜란 이전 1570-80년경 사이에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15-16세기 일본 무로마치 시대에 다도를 즐기던 풍습이 널리 퍼지며

일본놈들에게 있어서 와우 조선의 분청사기 다완 와우 딱이야 정말! 

 

차(TEA) 덕후 일본놈들의 레이더에 딱 걸렸나보다

 

16세기 조선 이도다완

와비차 라는 다도법 (차를 마시는 법)이 완성되며 일본놈들의 차 사랑은 더욱 넘치며

 

조선의 분청자가 오히려 수출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거기다 조선의 도공 '이삼평'은 일본으로 납치를 당하여 백자 생산의 신으로써 추앙받게 되니

 

조선의 도자기 솜씨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분청사기의 기법

1. 상감 (파고 그 안에 백토, 자토를 넣고 굽는다)

2. 인화 (도장)

3. 박지 (배경을 긁는 기법)

4. 음각 (조화, 백토 배경에 태토색이 보이도록 그리는 기법)

5. 철화 (흑갈색)

6. 귀얄 (붓으로 쓱싹쓱싹)

7. 덤벙 (담는 기법)

 

 

1) 분청사기는 귀얄, 조화, 인화 기법은 참 구하기도 보기도 쉽다 (경매나 골동품가게 기준)

 

2) 가격도 분청사기 완이나 사발 같은 소품들은 가격도 싸고 구하기도 쉽다 (물론 이는 천차만별)

 

3) 덤벙문 분청사기는 구하기 어렵고 좋은 작품 보기도 힘들다 (난 아직 직접 만져본 적도 없다)

 

4) 가격을 결정하는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분청사기의 경우 백토 분장의 두터움과 도자기의 형태를 먼저 본다

 

5) 딜러들도 한국의 도자기 중에서 분청사기 만큼은 진위여부가 어렵다고 한다

 

6) 그 만큼 가짜들도 많이 돌아다닌다는 뜻

 

7) 어쩌면 우리 선조들이 무심한 듯 심플하고 간편하게 만든 것이 오히려 진위여부 판단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8) 인화문 분청사기 같은 경우 도장 문양 하나하나의 디테일을 봐야 진위가 보인다고 한다

 

9) 나같은 놈은 그렇게 말해도 모르겠다

 

10) 굽바닥도 분청사기는 천차만별에 유약도 없는 경우도 허다하여 더욱 어렵다

 

11) 대체 과연 과학적으로 그리고 정확한 방법으로 분청사기 진위여부 판단이 가능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12) 아이러니하게 외국인들 그리고 해외에서 가장 사랑받고 한국 대표 도자기라고 하면 분청사기를 꼽는다

 

13) 그리고 더욱 아이러니하게 한국에서 고려청자와 백자에 비하여 분청사기의 위상은 낮다

 

14) 슬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