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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미술/고미술 도자기 이야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고미술 도자기 '달항아리' Moon J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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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18세기. 대영박물관 소장, 높이 47cm 너비 44.5cm

18세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고미술품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대부분은 달항아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 꽤 많은 달항아리를 보았다고 자부하지만, 대영박물관에서 본 달항아리가 내가 본 달항아리 중 가장 큰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 달항아리를 최고의 달항아리로 생각하기도 한다. 달항아리라는 작품을 처음 접하는 경우라면, 뚱뚱하고 균형도 맞지 않는 백자 항아리를 왜 조선시대 최고의 고미술품으로 평가되는지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달항아리, 18세기. 대영박물관 소장, 높이 47cm 너비 44.5cm

달항아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18세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이며 영조 시대 (재위 1724~1776)에 부터 도공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항아리의 주된 재료인 백자 태토 (백토) 자체가 견고한 흙이 아니며, 달항아리의 거대한 크기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몸체로 이루어진 태토로 제작하는 것이 아닌, 위아래 각각의 몸체를 부착하여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나 소성하는 과정 (도자기를 가마에서 굽는 과정)에서, 반죽 후 형태가 만들어진 도자기는 가마 내에서 불의 힘에 따라 형태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소성하는 과정에서 온전히 깨끗하게 완성되는 도자기의 숫자는 상당히 적으며, 소성 과정을 거친 대부분의 도자기들은 원래의 형태보다 전체 크기가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크기가 큰 달항아리는 아랫부분을 만들고 윗부분을 따로 만들어 흙물을 이용하여 접합하고 굽는 방식을 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달항아리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고미술품으로 손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유백색의 태토가 아닐까 싶다. 이는 18세기 조선시대 백자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달항아리, 18세기, 리움미술관

위 달항아리는 리움 미술관에 있는 달항아리이며,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듯한 자국들이 남아있다. 우리나라 국보로 지정된 백자 도자기 중에서도, 리움 미술관의 달항아리 같은 경우 자연스럽게 장 담근 듯한 자국들과 아름다운 비례미를 가진 것이 국내에서 쉽게 보기 힘든 완벽에 가까운 달항아리라고 생각한다.

 

아래에 있는 달항아리들은 직접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업로드한 것들이며, 개인적인 감상평을 작성하였다. 

 

달항아리, 19세기, 케이옥션 (좌) / 달항아리, 19세기, 아이옥션 (우)

왼쪽의 달항아리는 케이옥션에서 본 작품이며, 보이는 바와 같이 수리 자국이 아주 크게 나 있다. 이러한 금색으로 티 나게 수리한 흔적을 킨수기라고 일본어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수리 방식이 주로 일본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위 달항아리는 품질이 그렇게 좋은 작품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전체적인 형태 및 크기는 전형적인 달항아리의 것이지만, 구연부의 높이가 전형적인 19세기 후반의 작품을 나타내며, 태토의 색이 실제로 보면 너무 좋지 않았다. 19세기 후반에 지방 가마에서 주로 생산한 일명 '고구마 달항아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오른쪽의 작품은 왼쪽의 고구마 달항아리보다 더욱 품질이 좋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도예가가 이 달항아리를 만들 때 수비 과정 (도자기 흙을 발로 밟으며 흙 속의 공기를 빼는 과정)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지, 표면에 소성 과정에서 발생한 홈들이 너무 많았던 작품이었다. 태토색도 좋지 못하고 형태도 전형적인 고구마 달항아리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런 고구마 달항아리는 꽤 흔하다. 

 

달항아리, 19세기, 서울옥션 (좌) / 달항아리, 19세기, 케이옥션 (우)

서울옥션 경매 웹사이트에 올라온 작품 사진을 통해 직접 방문하여 보고 온 달항아리었다. 실제 보았을 때 형태는 괜찮았지만 태토 색이 좋지 못하였고 가장 큰 흠으로는 굽 바닥이 정말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이상하고 좋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매 시작 가격이 너무 높았다. 포토샵은 역시 믿으면 안 된다. 

 

오른쪽의 달항아리는 전체 태토에 붉은 색을 띠고 있어서 기억에 남는 것 같다. 특히나 위아래 접합 부분을 따라서 붉은색들이 이어져 있는 것이 독특하고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이러한 붉은색의 띠는 소성 과정에서 불을 덜 받게 되면 띄게 되는데, 위의 달항아리 같은 경우 그 정도가 조금 심했던 것 같다. 

 

달항아리,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좌) / 달항아리, 18세기, 오사카 동양도자박물관 (우)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대형 달항아리이다. 대부분의 달항아리는 높이가 30-40cm 사이에서 제작된 것이 대부분인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이 달항아리 (41cm)와 대영박물관의 달항아리 (47cm)는 크기가 남다른 작품으로 여겨진다. 거대한 크기에 걸맞은 달항아리만의 불균형 성과 우윳빛 태토는 명풍이라 일컬여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많은 한국 고미술 상인들, 그리고 실제로 일본 고미술 거리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고미술 상인들 사이에서는 오른쪽의 달항아리를 명품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달항아리였기에, 기대를 많이 하고 방문하였다. 형태, 태토 그리고 크기는 정말 명품이 틀림 없었지만, 이전에 갖고 있던 소장자의 집에 도둑이 들어와 훔치려다 떨어뜨려 다시 이어 붙이고 복원한 달항아리였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이상함이 없던 작품이었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수리 자국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달항아리였다. 

 

달항아리, 19세기, 파리 기메박물관

프랑스 파리에 가면 기메박물관이라는 곳이 있다. 사실 조금 한적한 곳에 위치한 박물관이고, 고미술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던 박물관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기도 하고 한국 고미술품들 (불교 미술와 도자기 위주) 그리고 한국 현대미술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던 박물관이었다. 그중에서도 저 달항아리가 많이 기억에 남는데, 소성과정에서 불을 아주 제대로 받은 것인지 여기저기 붉은 띠가 많이 나타난 작품이었다. 

 

 

글을 마치면서 한국 고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상이 있다. 고려미술관을 설립한 정조문에 대한 동영상인데, 영상을 보는 내내 정조문이라는 사람이 한국 고미술품을 정말 사랑했고 한평생을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며 한국 고미술품을 수집한 것을 보고 정말 감동을 많이 받았다. 영상을 보면서 정조문이 생전에 찍은 영상 및 사진을 보면 이 사람이 정말 너무 좋아해서 수집을 한 것이 보이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고미술품이 되었던 다른 분야의 작품이 되었던, 수집을 하는 물품에 대하여 물질적으로 접근하고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정조문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 고미술품과 도자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