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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미술/한국 근현대미술

3. 김환기 (Whan-ki Kim): 단색화 운동의 주창자이자 한국적인 것을 사랑한 한국 근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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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 이미지들의 연속인 앵포르멜 화풍과 단색으로 이루어진 오묘하면서도 조화로운 형식의 미국 추상 표현주의는 단색화의 탄생에 기여한 운동으로 생각되어지며, 주창자라고 할 수 있는 김환기 (1913-1974)의 작품을 통하여 단색화는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화풍으로써 발전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환기는 국내에서 보다도 일본이나 미국에서 직접 경험하며 본인의 화풍을 정립했다고 하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자신의 작품 앞에서의 김환기

김환기는 1933년부터 약 4년간 동경대학교를 다녔으며, 입체파적이며 기하학적 이미지들을 선보인 피에트 몬드리안 (내가 앞글에서 보여준 그림의 작가)의 작품들을 두루 보고 다녔다고 한다.

 

1947년에 '신사실파'라는 모임을 만드는데, 젊은 한국 작가들과 함께 추상 표현주의를 추구하는 하나의 예술 모임이었다고 전해진다. 

 

왼쪽부터 장욱진 유영국 김환기 이중섭 그리고 백영수 (신사실파의 주멤버들)
장욱진, 나무, 1981(왼쪽) 유영국, 작품, 1989 (오른쪽)
이중섭,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왼쪽) 백영수, 창가의 모자, 1988

해방 후 최초로 등장한 추상주의를 내세운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었으며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그룹으로 여겨진다. 비록 1953년까지밖에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후의 한국 추상주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하여간에 1940년대 김환기의 작품들은 주로 추상적인 형태를 바탕으로 대담한 색의 대비 그리고 기하학적 구조를 주로 이루는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전의 글에서 보여준 '론도'라는 작품 혹은 아래의 '섬이야기' 같은 작품들)

 

김환기, 섬이야기, 1940년대

그 이후 50년대 후반 김환기가 파리에서 작품을 활동하던 때에 이르러서는 그 때 당시의 프랑스 엥포르멜 작품들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두꺼운 마티에르와 기가학적 구성들을 조합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한국의 자연경관과 연관성이 있는 한국적인 모티프들을 본인의 예술 세계에 주입하기 시작하였다.

 

김환기, 화실, 1957

 달, 사슴, 학, (십장생에 포함되어지는 심볼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조선의 대표 골동품 달항아리와 같은 백자 도자기들을 자신의 그림들에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김환기, 영원의 노래, 1957

특히나 한국적인 상징들을 이용하여 한국적인 추상미를 표현하였다. 

 

단색화라는 화풍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김환기가 1964년 뉴욕으로 건너가 1974년 그가 죽기까지의 기간 동안 탄생시킨 작품들이라고 생각된다.

 

김환기에 있어서는 잭슨 폴록의 남성적인 마초마초스러운 예술 작품 보다는 은은하면서도 여성스러움이 느껴지는 마크 로스코 (1903-1970)의 작품이 더욱 큰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마크로스코, 오렌지 레드 그리고 오렌지, 1970

김환기의 예술적 기교에 특히나 영향을 끼친것으로 보이는데, 기하학적 구성과 대비되는 대담한 색들의 대비 그리고 색들의 다양하면서도 깊은 결들이 단색화 화풍의 발전을 이끄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환기, 아침의 메아리 04-VIII-65, 1965

특히나 위의 작품 김환기의 아침의 메아리 같은 작품이 한국의 엥포르멜 운동에서 단색화의 초기단계로 가는 중간길목에 위치했던 작품으로 여겨진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색들의 대담한 배치들과 한국 엥포르멜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 이미지들이 이를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토대로 김환기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캔버스 전체를 반복적인 행위를 통하여 작은 추상적인 점들과 선 그리고 이미지들로 채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김환기의 뉴욕에서의 작품들은 한국 단색화 화풍의 탄생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과 다름이 없었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김환기의 위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단색화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라고 칭하고 싶다. 

 

푸른색의 단색화가 이브 클라인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수 많은 우주의 별들을 보여주듯이 파란 네모난 기하학적 점들이 모여 하나의 군상을 이루는 듯한 작품은 김환기의 단색화가 서양의 단색화와의 비교에 있어서 확실화된 차별성을 보여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캔버스 전체를 간략화된 추상적 이미지들로 채우고, 더 나아가 연속적인 반복행위는 공예작품을 보여주는 듯한 솜씨를 보여준다. 이러한 공예기법을 연상시키는 반복적 행위는 단색화 화풍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특징으로서 받아들여 지며 단색화 화풍을 논할 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으로서 논의되어지고는 한다. 

 

김환기, 하늘과 땅, 1973

또 다른 예시로는 김환기의 '하늘과 땅'을 볼 수 있는데, 정교한 기법과 같으면서도 다르게 구성되어 있는 무수한 점들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하얀 선이 같은 색임에도 불구하고 표면성을 부여하며 제목 그대로 하늘과 땅으로서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오묘함을 일으키는 파란색과 대비되는 구성은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늦은 밤 하늘에 떠오른 것 같은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 김환기의 점으로 이루어진 단색화 작품들이 뉴욕에서 주로 전시되었는데, 한국의 모노크롬 작품으로서 뉴욕의 예술세계에서도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었는데.

 

그 때 뉴욕의 몇몇 예술 평론가들이 김환기의 작품을 전후 미국 작가들의 작품들을 따라하는 '아시아 버전 미국 전후 작가'라는 혹평을 남기기도 하였다. 

 

Helen Frankenthaler, Sanguine Mood, 1971

그러나, 김환기는 그러한 특정한 화풍이나 문화에 스며들거나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였는데 (크으 상남자다), 오히려 자신은 새로운 한국만의 예술화풍을 만든 것으로 주창하였으며 동양과 서양을 합친 한국만의 '한국미'를 만들기를 원했다. 

 

이러한 그의 느낌 같은 느낌?에서 알 수 있는 것이 그의 수 많은 점들과 작은 네모네모 스펀지밥 스러운 이미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얼마나 한국의 골동품을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다.

 

분청사기 인화문병, 15세기, 리움미술관

분청사기의 인화문 기법을 보면 (분청사기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무수한 점들이 하나의 구성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김환기 또한 이러한 모습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아 근데 저 인화문병 미쳤다 진짜 DOG이쁘네 난 저거 말고 국립중앙 박물관 (AKA 국중)에 있는 인화문병을 더욱 좋아한다 아 진짜 이쁘네 또 보러 가야겠다)

 

청회색 태토에 하얀색 백토로 실험적인 인화기법을 통해 찍어낸 분청사기를 보며 환기형님도 감탄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형 나도 분청사기 참 좋아해) 

 

김환기의 단색화 초기 작품들은 다른 젊은 작가들을 뭐랄까 추상의 세계로, 단색화의 세계로 독려하는 하나의 장치로 생각되어진다. 김환기가 다른 친구 작가들에게 쓴 편지를 보면 "예술세계의 중심이 현재 유럽에 쏠려있는데.... 우리는 유럽의 예술을 최대한 지양하여야 한다. 유럽의 예술을 따라하다 보면 그건 결국 모방에 불과하다." 

 

그의 제자에게 보낸 편지 중 하나는 "우리 예술가들에게 있어 가장 비극적인 것은 우리가 바깥 세상의 과거와 현재를 많이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크고 넓은 세상에 살고 있더라도, 우린 그저 우물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한국 작가일 뿐이지 세계적인 작가는 아직 아닌 셈이다."

 

김환기의 편지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를 원했던 그의 열망을 볼 수 있다. 

 

김환기의 단색화 작품이 시초가 되어 다른 한국 작가들 또한 단색화 화풍의 열기에 빠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단색화 화풍의 확장은 세명의 한국 작가들 : 윤형근, 이우환 그리고 박서보의 작품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