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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미술/한국 근현대미술

5. 이우환 (Ufan Lee): '모노하'의 주창자이자 단색의 선과 점을 이용해 구성을 창조하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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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부터 그림 앞의 이우환 위작건은 잘 해결...아 아니다 미안해요

이우환 (1936~)은 현재 활동하는 단색화 작가 중 단연 톱 작가로 손 꼽히는 작가이며, 그의 ~로부터 시리즈는 한국 미술계에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이며 그를 단색화 화풍의 선봉장으로 있게 해준 주제이다. 

 

이우환은 서울대학교에서 1956년까지 공부하였으며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흔히 '자이니치'로 불리우는 일본에서 생활하는 한국 사람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는 1945년에 끝났지만 일본 내 사회에서는 그때까지도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였고 이는 일본 예술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회적 문제였다.

 

일본 내 예술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던 이우환이었으며 1960년대 말 '모노하' 운동의 주창자 중 한명으로서 일본 예술 세계에서 그의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하였다. 

 

모노하 라는 예술화풍은 모노 (일본어로 물건, 물체라는 의미)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는데, 인공의 제조를 거치지 않고 일상의 흔한 소재들이나 물체들을 특정한 장소에 둠으로써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사물과 사물 더 나아가 이 물체를 마주하는 인간과 사물과의 관계에 대한 예술화풍이라고 하는데 이게 뭔 소리인가 싶다. (개인적 사족이지만 결국에는 말장난 예술이라는 뜻 같다)

 

이우환, 관계항, 1969
이우환, 관계항, 2009

'물체의 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봅시다. 고무줄자의 속성은 거리를 재고, 고무이고, 잘 늘어납니다.

돌은 묵직하고 자연의 것이며 변하지 않는 물체입니다. 이 두개의 물질들이 만나니 서로 가지고 있는 속성과 성질이 극대화 되어 잘 부각되었습니다. 늘어남과 묵직함으로요. 줄자의 역할은 길이를 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것이 작품안에 들어옴으로써 길이를 재는 것의 의미를 없애고 고무의 속성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속성을 드러나게 만드는 매개체가 돌인 것입니다.'

 

(아트인사이트, [Opinion] 점 하나로 세계를 평정한 이우환, 구타이 그룹과 모노하- ② [문화예술교육] 에서 발췌한 문단)

 

미안한데 이게 뭐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아마 작성한 분은 무슨 말인지 알까?

하여간에 이우환 작가는 모노하 작품을 통하여 물체와 공간의 예측불가능한 순간적인 만남이 주는 관계 자체에 관심이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노하의 주제를 그림으로 옮기기 전 다른 재료들을 갖고 표현한 작품 두가지가 존재한다. 

 

이우환, 자름으로부터?, 1965

 

이우환, 표시로부터, 1973

단색으로 표현된 반복적인 형태의 작품들 이후로 이우환은 본격적으로 캔버스에

그가 주창하고자 했던 모노하 정신을 옮겨담기 시작하였다. 

 

이우환, 선으로부터, 1976

이우환의 단색의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시리즈는 그가

바넷 뉴먼의 작품을 1971년 뉴욕에서 접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바넷 뉴먼, 제목 몰라, 1961

뉴먼 형님 참 단색화 작가들에게 영향을 참 많이 준거 같다. 

하여간 뉴먼의 추상적이고 미니멀리즘 그림은 이우환에게 ~로부터 시리즈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함이 틀림없다. 

 

이우환, 점으로부터, 1978

파란 점들과 선들이 무수하게 연속적으로 표현되는 구성은 화면의 끝이나 모서리 같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우환은 연속적으로 붓의 끝으로 점들을 그리거나 안료가 다 닳을 때까지 선을 끝까지 이어서 그리는 기법을 사용했고, 결국 각각의 선과 점들이 끝날 때 안료의 물질성을 나타내는 희미한 점과 선들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우환은 인터뷰 중 자신에게 그림을 알려준 선생님 중 한명은 자신에게 모든 그림의 기본은 선과 점으로부터 시작된다 라고 자주 이야기 하곤 했다고 한다. 이러한 신념에 의거해 이우환은 반복적이고 연속적인 행위를 기본으로 자신만의 모노하 주제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이우환, 점으로부터, 1976

파란 점들이 수평, 수직으로 이루어져 선과 점을 이루는 것이 이우환의 트레이드마크였는데, 이우환의 작품 중 특이하게 소용돌이 처럼 중앙을 향해 구성되어 있는 점으로부터 시리즈도 존재한다.

 

이러한 형식은 불교의 '만다라'를 연상시키게 하는데, 불교의 종교적 구성을 띄고 있는 형식에 이우환의 작품에 항상 스며들어 있는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점,선을 만드는 예술적 행위는 불교의 한 분파인 선종의 명상 방법인 참선(좌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우환이 모노하 설치예술품에서 강조했던 '사물과 사람 그리고 공간 셋 사이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만남과 조화 그리고 불협화음 ' (참 어렵다), 이러한 중심이 되는 주제는 오히려 그의 그림에서 더욱 더 그 의미를 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우환의 모노하 작품들속, 돌덩이를 유리위에 던지던가 돌을 갤러리 공간에 놓던가 하여간 이상한 말장난?놀이들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에서 발현된 물체의 물질성과 공간 그리고 관객의 만남은 이우환의 연속적 행위가 만들어낸 점과 선을 가진 그림들과도 연관이 있다. 

이우환, 조응, 1998

무심코 지나쳤던 그림의 가장 기본이 되며 일상적이고 평범한 점과 선들이 하나의 구성을 이루며 이우환을 통해 그것만의 특별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게 되고 그걸 지켜보게 되는 관객들과의 만남, 그 순간이 하나의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모노하의 정신이 어쩌고 저쩌고 간에 이우환의 작품 가격이 김환기의 뒤를 잇는 그야말로 현재 살아 있는 단색화 작가중에서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 가격이 제일 높다 (위의 조응이라는 작품 가격은 거진 10~20억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이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른다.

 

내게 있어서 현재 이우환은 흔히 말하는 돈 맛을 알고 난 후 순수함을 잃은 작가로밖에 비추어지지 않는다.

몇년간 문제가 되었던 위작 문제를 관련하여 보여준 그의 미지근한 반응과 과학적 증명에도 불구하고 어물쩡 넘기려는 그의 태도, 이우환의 작품이 위작 논란을 받더라도 나는 그가 자신있게 말하길 바랬고 정말 그의 주장이 사실이길 바랬다. (물론 이 위작문제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단지 내 눈에는 다른 단색화 작가들에 비하여 작품을 만드는데 공들이는 노력이 점차 사그라들고 열정을 잃어가는 것 같다. 특히나 70, 80년대 이후의 2000년에 가까워질수록 (유명해지고 비싸질수록) 대충 찍어내는 듯한 그의 작품들을 주욱 보고 나면 참 안타깝다고 해야할까, 뭐 이우환 작가의 나이도 굉장히 많은데 나같이 어린놈이 무엇을 알겠느냐만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이우환 (그리고 바로 다룰 박서보) 이 둘은 정말 눈에 띄게 자본주의적 성향으로 변한 단색화 작가들이라 내가 참 아쉬우면서도 어느정도 이해는 가는 편이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쩌면 그게 내가 설치미술 현대미술을 말장난이라고 표현하는 지도 모르겠다. 모든 예술이 다 말장난 아니냐? 라고 하면 난 그들에게 그럼 고미술을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당장 서양 고전주의 바로크, 낭만주의 그림들만 봐도 혹은 겸재 정선과 같은 서화들만 보아도 그들의 노력과 열정이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색화 작가들의 노력이 전혀 없다고 폄하하는것은 절대 아니다. 적어도 내 눈에는 옛 그림들 그리고 고미술품들이 종교적 이유가 되었던 어떠한 정치적 혹은 예술적 신념이 있었던 간에 그 노력의 흔적들이 확연히 보인다는 것이다, 말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저 확연한 주제에 뛰어난 솜씨만 있을뿐.

 

그리고 난 현대 작가들 그리고 앞으로 나올 미래의 작가들 중에서도 분명 그러한 노력과 예술적 우직함을 기본으로 뚝심있게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이 앞으로 계속 나오길 바라고 언젠가는 단색화 화풍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화풍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 아니 그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