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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미술/고미술 고가구 이야기

한국의 고가구 '반닫이'를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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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닫이의 구조와 명칭

 

이 글은 반닫이의 구조 혹은 명칭과 같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을만한 정보에 대한 글이 아닌, 반닫이 혹은 다른 고가구 작품들을 볼 때의 중요한 몇 가지 포인트를 알려주고자 작성한다. 물론 필자 또한 아직 한참 배우는 학생이고, 실제 일하면서 배웠던 지식들을 조금이나마 나누어주고자 이 글을 작성한다. 

 

반닫이라는 목가구는 우리 한국의 전통 가옥의 특성인 '좌식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앉아서 생활을 주로 하기에, 반닫이는 이러한 생활 방식에 최적화된 수납공간으로써 안이 깊고 넓은 것이 특징이다. 지역별로 크기나 장석의 디자인이 다르며 구조 또한 다르게 제작되었다. 이러한 지역별 특징은 추후 다른 글로 다루어볼 예정이다.

 

조선의 디자인Ⅲ_반닫이展 2016. 03. 11(금) ~ 05. 07(토)

아래 기입하는 내용들은 순전히 초보 콜렉터로써 알려주는 내용이니, 절대적으로 참고할만한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반닫이라는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 답십리와 인사동, 대구 등 수많은 고미술 상인들이 존재하지만, 모두 다 진품의 반닫이를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1) 무게

 

대부분의 반닫이들은 19세기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18세기에 제작되었다고 주장되어지는 작품들도 있지만, 과학적인 접근이 행해지지 않는 이상 이걸 증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100년이 넘은 반닫이는 수납공간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면 반닫이 자체 목재의 수분이 모두 빠져나가 실제 보이는 크기나 모습보다 현저히 가벼울 확률이 높다. 아무리 칠을 옛것처럼 바꾸고 장석을 갈아도 판재의 수분을 바꿀 수는 없다. 

 

2) 비례미와 비율

 

반닫이 중의 최고급으로 치는 강화반닫이, 북촌박물관 (좌) / 출처를 알 수 없는 북한 반닫이 (우)

위 두 사진만 보아도 필자가 이야기 하는 비례미와 비율이 무엇을 보여주는지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왼쪽이 진품 강화반닫이 오른쪽이 북한에서 건너온 것 같은 흔히 말하는 장석이 갈린 반닫이. 

 

강화 반닫이는 반닫이 종류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흔히 말하는 명품 반닫이로 평가되고 있다. 크기나 두께가 다른 반닫이에 비해 크고 두껍다. 강화도에는 옛날부터 느티나무와 같은 두껍고 튼튼한 나무들이 많이 있는 지역이었고, 특히나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 그리고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과 가까웠으며 바다 쪽 출구를 막는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되는 지역이었다. 또한 폐위된 왕들이나 왕자들이 유배를 오는 유배지로서도 유명한 곳이었다. 이러한 왕족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인 만큼 그들이 사용하던 목가구들도 모두 고급 재료인 느티나무가 주로 쓰이게 되었다. 

 

왼쪽의 반닫이는 정말 강화 반닫이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장석의 비율과 목재의 크기, 장석의 위치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정확한 위치에 배치가 되어있다. 안타깝게도 오른쪽의 좌물통은 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에 반하여, 오른쪽의 반닫이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다. 우선 전체적인 크기가 강화 반닫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다. 앞바탕 장석은 몸에 비하여 너무 크고 다른 장석과 조화를 이루지도 않는다. 중앙의 호리병 장석을 잘 보면, 왼쪽의 강화 반닫이와 달리 호리병의 중앙이 아닌 약간 엇나가게 호리병 상단 부분을 경첩이 지나가고 있다. 아쉽게도 조선 목가구에서는 호리병의 목을 가로지르는 행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비례가 맞아야 한다. 왼쪽의 반닫이처럼 호리병의 몸을 딱 2등분으로 나뉘어 경첩이 가로지르는 것이 맞는 구성이다. 또한 호리병 아래의 배꼽 장석은 너무 작다. 앞바탕의 양 옆에 위치하여 있는 장석들은 거기다 앞바탕을 기준으로 거리감도 위치도 어긋난 것으로 보인다. 들쇠 또한 없으며, 모서리의 귀장석들 또한 너무 작다. 이러한 작품은 목재와 몸은 본연의 것일지도 모르나 장석들은 여기저기서 짜깁기 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고 장석이 갈렸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추가내용 2020/07/26)

강화반닫이, 조선후기, 국립중앙박물관
강화반닫이, 조선후기,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의 호리병 경첩을 가로지르는 경우, 혹은 가로지르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확인하였다. 아직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3) 내부

고미술품과는 무관한 반닫이

겉은 멀쩡하나 안을 열어보면 티가 나는 작품들이 있다. 특히나 이는 외국인들이 많이 속는 방법인데, 내부에 한자 혹은 한지로 되어 감싸져 있거나 연대가 있어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오래된 종이 같은 것을 붙여 놓는 경우들이 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반닫이들이 진품일 확률이 아주 높다. 내부에 종이나 알 수 없는 한자로 되어 있는 작품들은 웬만하면 구매하지 않는 게 좋은 방법이다. 또한 내부에 공간 서랍이 몇 개가 있는지, 서랍을 열고 안쪽면과 바깥면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제 몸에 맞는 서랍들인지 확인을 해봐야 한다. 그리고 반닫이의 외부는 바꾸기 쉬워도 내부는 바꾸기가 어렵다. 내부를 바꾸려면 판재를 다 분해를 하거나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시골에서 열리는 장터 경매장 같은 곳을 가면, 정신없는 분위기를 이용하여 고가구의 내부를 보여주지 않고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4) 옻칠의 흔적

나주반닫이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나주반닫이이다. 장석 위에 못이 박힌 것이 시원하고 간결함을 보여준다. 크기는 아주 크지만 최소한의 장석들만 들어가고 간결한 디자인들이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것 같다. 대부분의 반닫이는 부식을 막기 위하여 옻칠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위와 같이 나뭇결을 보기 위해 지우기도 한다. 여기서 또 하나 팁을 공유하자면, 옻칠을 지우더라도 절대 완벽하게 지울 수 없다. 위 작품도 직접 방문하여 자세히 보면, 장석의 모서리 부분이나 경첩이 맞닿는 부분 등 사람의 손으로 절대 지울 수 없는 부분들은 이전의 옻칠들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5) 결국에는 안목 

 

이 세상 어느 고미술 시장을 가더라도, 절대 고수 혹은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무수한 경험을 쌓은 연륜 있는 고미술 상인이라면 그의 말이나 정보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유명한 고미술 상인이라고 해서 그의 말이 모두 진실은 아닌 것이고, 모두 거짓은 아닐 것이다. 과학적으로 검사 (탄소측정)를 하기에는 시간도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결국에는 스스로 안목을 키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의 신뢰할 수 있을만한 기준을 정할 수는 있다. 유명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미술 작품들을 기준으로 삼고, 계속 비교 분석하며 배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법은 이미 수많은 고미술 상인들이 실제로 판매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유명 경매장에서 출품된 작품의 카탈로그를 보여주면서 경매에 나온 작품과 지금 내가 판매하는 작품이 비슷한 작품이다, 혹은 같은 작품이다 라고 말하며 일종의 레퍼런스를 제시하며 판매하기도 한다. 

 

유명 박물관에 물건을 판매한다는 것은 고미술 상인들에게도 굉장한 업적과도 같은 것이다. 국가기관을 상대로 물건을 사고 파는 상인이라면, 그가 보는 안목과 경험은 이미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위험을 제공한다. 진위 논란이 있는 작품을 국립 박물관에 판매하는 순간, 고미술 상인으로써 그의 경력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박물관에 작품을 판매한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이를 알고 있는 몇몇 박물관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구매를 하거나 혹은 공짜로 제공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몇몇 상인들은 국공립 박물관과는 거래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믿을만한 작품들이며,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공부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