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고미술/고미술 고가구 이야기

한국을 대표하는 골동품 - 조선 고가구의 종류

728x90

한국 가구박물관 전경

가구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생활도구 혹은 의식주와 연관되어 있는 행동 및 생활에 필요한 기물로서 표현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서양식 문화인 입식 생활양식을 따르고 장식적인 목적을 띄고 있는 서양식 가구를 통한 인테리어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전통적인 한국 문화는 앉아서 생활하는 좌식생활양식과 장식성보다는 실용성을 염두에 둔 한국식 목가구를 이용한 공간감을 강조하였다. 서양의 고가구들이 높이가 높고 세로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면, 조선시대 고가구들은 좌식생활에 최적화하여 높이가 낮고 가로 형태의 가구들이 대부분이다.

 

조선시대에 일상용 목가구를 모두 갖추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일반 서민들은 반닫이와 장, 농까지 갖추고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으며, 대부분의 잘 짜인 목가구들은 사대부 집안에서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는 유교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시대였으며, 선비 및 양반이라는 계급이 주된 사회 계층이었다. 이러한 신분질서와 관료제 등의 유교문화는 조선시대 목가구의 구성과도 큰 연관이 있었다. 

 

서안 / 연상 / 문갑, 조선후기
사방탁자 / 의걸이장 / 책장, 조선후기

선비문화가 주를 이루던 조선시대에는 크게 생활공간에 따라 목가구를 배치하고 쓰임에 따라 제작하였다. 선비들이 주로 머물던 사랑방에는 주로 문방 생활에 필요한 가구들로 채워졌다. 글을 읽고 쓰는 서안, 벼루를 보관하던 연상, 중요 기물들을 보관했던 문갑, 소품들 혹은 기물들을 장식했던 사방탁자, 의관을 보관하는 의걸이장 그리고 책을 보관하는 책장 등이 사랑방에 배치되던 대표적인 가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머릿장 / 반짇고리 / 경대, 조선후기
이층농 / 이층장, 조선후기

가정생활의 중심이 되는 안방에는 주로 여성들을 위한 가구들로 배치가 된 것이 특징이다. 온화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위하여 무쇠장석을 주로 쓰던 사랑방 가구에 비하여, 주석이나 백동으로 꽃, 나비, 물고기 그리고 그 외 길상문을 사용하면서 장식성을 강조한 가구들이 쓰였다. 안방 가구들은 주로 의복을 넣어두는 장과 농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장과 농의 차이점은, 장은 하나의 판재로 각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고 농은 각기 다른 판재를 이용하여 만든 층을 위아래로 합친 것을 농이라고 한다. 그래서 농 같은 경우 따로 분리하여 바닥에 놓거나 위에 쌓거나 하는 분리가 가능하였다. 이 외에도 함과 머릿장과 같은 수납가구들이 주를 이루었다. 

 

찬장 / 찬탁, 조선후기
뒤주 / 해주반 / 나주반, 조선후기
통영반 / 호족반 / 구족반, 조선후기

부엌가구들은 음식물의 준비나 보관을 위하여 가구 내에 반찬이나 기호 식품들 혹은 식기들을 넣어두는 용도로 주로 쓰였다. 또한 음식 조리를 위하여 불을 지필 때 아궁이에서 나오는 연기와 그을음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목재가 쓰여야 하며, 조선시대에는 설거지한 식기를 엎어놓아 자연건조하는 방법을 이용하였기에 물기가 스며들어도 틀어지거나 휘어지지 않는 목재가 필요하였다. 이를 위하여 두꺼운 판재와 굵은 기둥으로 제작하였으며, 습기와 그을음에 강하고 튼튼한 소나무가 주 목재로 쓰였다. 유교의 영향으로 인하여, 남녀유별에 따라 남자 같은 경우 겸상 없이 독상으로 식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이를 위하여 혼자 들고 먹기에 좋은 소반이 좌식생활에 알맞은 식탁 역할을 하였다. 지방에 따라 종류가 나뉘거나, 지역에 따라 구성과 특색이 다르게 제작되었다. 

 

윗닫이 (돈궤) / 강화반닫이 / 경기도반닫이, 조선후기

 

위 목가구들과 달리 다용도로 쓰는 수장 가구로는 궤 혹은 반닫이를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위판이 열리는 것을 윗닫이라고 불렀으며, 돈을 보관하는 돈궤로 쓰거나 혹은 기타 기물을 넣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 쓰이던 무거운 주화를 보관하기 위해 두껍고 단단한 판재를 사용하였고, 사용이 편리하도록 위판을 여닫는 방식으로 제작하였다. 상부의 뚜껑이 열어젖혀야 안에 내용물을 꺼낼 수 있었으므로, 위판 위에 다른 기물들을 올려놓을 수 없었다. 이와 달리 반닫이는 앞판 (문판)이 아래로 열어젖혀 사용하는 궤의 형식이며, 윗닫이와 달리 천판에 여러 기물들 (책, 이불, 의복 등)을 보관하는 것이 가능했다. 궤는 소반과 함께 어느 지방에서 제작되었는지에 따라 구성과 생김새가 확연히 차이가 나는 목가구이다. 다양한 형식을 가진 반닫이와 관련하여 각 지방 및 지역에 따라 더 자세하게 다루어 볼 예정이다.  

 

조선시대 목가구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재료로는 가볍고 광택이 없으면서 부드러운 오동나무 혹은 한국의 목공예품 제작에 널리 쓰이는 튼튼한 소나무가 주로 쓰였으며, 나무결이나 다른 추상적인 무늬를 표현하기 위하여 다른 재료를 쓰기도 하였다. 느티나무 (괴목)은 단단하고 나뭇결이 용의 비늘 같아 '용목'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피나무는 목리가 없어 나무 자체의 멋은 없지만 화려한 투각 기법을 이용한 장석으로 멋을 낼 때 사용하였으며, 먹감나무는 재질이 연하지만 나뭇결에 나타난 특유의 문양 때문에 이중 판재 (안쪽은 튼튼한 판재로 겉의 치장용 판재는 먹감나무로) 기법을 통하여 문갑 및 다른 목가구에 쓰이기도 했다.